터널을 지나 일상으로

2019. 4. 4. 23:59에세이 하루한편


친구들에게 할머니 별세 소식을 알렸다. 일 년 반이 넘도록 얼굴을 보지 못한 이도 있고, 새해에 보자는 말, 3개월 전에 한 연락을 끝으로 더는 연락이 없던 이도 있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너무 오랜만에 연락하네. 문득 궁금한 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시간 뒤 각자 답장이 왔다. 보고 싶다, 잘 지내느냐, 난 잘 지내. 별일 없지? . 중학교 동창인 S에게 답장을 보냈다. 작년 겨울, 새해에는 꼭 보자는 말 다음으로 한 연락인 셈이었다. 평정심을 되찾았어. 연락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렸네. 문장을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 문자가 전송되는 소리가 울렸다. 평정심을 되찾았어. 문자를 보내고 나도 저 문장만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도 잘 몰랐던 속마음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내가 평정심을 되찾았구나. 이제야 좀 괜찮은가 보구나.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설명할 때야 비로소 나를 알게 되는데, 오늘이 그랬다. 내가 나를 알게 됐다. 괜찮아지고 있다. 나아지고 있다. , 그렇구나. 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이었다. 이제 너 자신에게 집중하고 네가 원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어.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준 것 같았다. 어둡고 공기가 탁한 터널을 막 지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옷소매로 입을 막고 불편함을 견디며 빛이 있는 쪽으로 걷어가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한 느낌. 환한 빛이 있는 쪽으로 나와 보니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터널을 지나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난 그 속으로 들어가 어딘가로 걸어가는 중이다. 평정심을 되찾았어. 당분간은 긴 터널과 만나고 싶지 않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 찾아오고 떠나겠지만.

이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 내 일상을 되찾은 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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