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가 그랬거든요

2019. 4. 5. 23:55에세이 하루한편


도서관에 갈까 하다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어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노트북을 켰다. 지원서를 써야 했다. 인문 360도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인문쟁이 5기 시민기자단 활동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사이트 운영경력에 질의에 대한 답변을 적다가 생각했다. 하루에 다 쓸 수 있는 양이 아니네. 뻐근한 눈을 쉬어줄 겸 저녁을 먹었다. 옛날 예능을 보면서 밥을 먹고 또 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8시를 훌쩍 넘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출을 선택할 수 있는 삶 너무 좋은데? 밖에 나가서 일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좋고. 가끔 게을러진다는 게 문제지만. , 용돈을 벌 수 있을 만큼만 원고료를 받고 싶다. 일은 어차피 계속해야 하는 거고, 이왕 할 거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더 쓰고 싶으니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지내는 삶을 살고 싶다.

분기별로 다르게 사는 것도 재밌겠다. 몇 개월 동안은 일해서 돈을 모으고 몇 개월간은 글만 쓰고, 또 몇 개월간 여행을 다니고. 또다시 일하고 돈을 벌고 글을 쓰고, 또 쓰고.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도 부풀었다. 각이 많은 것은 슬픈 일이야. 생각은 대체로 밝은 쪽으로 뻗어 나가지 않으니까. 오늘 아침에 읽은 책 김성중 작가의 단편소설 버디중에 나온 문장이었다. 사실 오늘은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결국엔 쓸데없는 생각으로 정리해버릴 것들에 대한. 관계에 대한 생각. 누군가의 연락으로부터 싹 트는 생각. 내가 누군가를 신경 쓰고 좋아하는 것만큼 날 찾지 않는다는 느낌에 대한 생각 등. 그렇게 툭, 나에게 찾아온 생각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되고 잔가지를 뻗어냈다. 그렇게 열심히 자라지 않아도 될 생각이건만 머리는 쉴 새 없이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젠 날 예전처럼 필요로 하지 않는 거야. 연락을 한다면서 왜 안하는 거야.

생각도 적당히가 필요하다. 너무 많은 것을 따지다보면 길을 잃고야 만다. 무엇을 물어보기 위한 질문이었는지를 잊게 되는 답변이 된다. 너무 많은 생각은 줄이자. 생각은 대체로 밝은 쪽으로 뻗어나가지 않는다고 버디가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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