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디아 여행기] 6. 숨참을 만큼만 하라

2019. 4. 12. 12:14이제는 여행작가/나의 섬, 제주 한 달

숨참을 만큼만 하라

해녀들은 숨을 참고 물질하다 해수면 위에 떠서 한 번에 숨을 몰아쉰다. 휘요이, 휘요이 하는데 마치 돌고래 소리 같다. 1~2분을 참다 제대로 된 숨을 쉴 때 나는 소리다. 인내의 소리, 성실의 소리다. 가끔 내가 게을러졌다고 느낄 때면 그들의 벅찬 숨비소리를 또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벽화에 새겨진 해녀

 

김녕 세기알해변을 가기 위해 동네 골목을 이리저리 쏘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벽화가 있다첫 번째 그림은 어딘가 고단해 보이는 뒷모습이다살짝 굽은 등에 한 손엔 테왁과 망사리를 들고 바닷속을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바다는 양쪽으로 갈라져 해녀가 건너기 쉽게 도와준다마치 모세의 기적 같다그림 한쪽엔 저승 돈 벌러 감쩌라고 적혀있다저승 돈 벌러 간다목숨을 걸고 바다와 싸워야 하는 그들의 굳센 마음가짐이 아닐까.

다른 그림은 수경을 쓴 해녀의 형태 안에 바다를 그려 넣었다. 물고기, , 문어까지 헤엄치는 깊은 바닷속이다. 그 안에 해녀들이 헤엄치고 있다. 노란 바탕에 오늘도 폭삭 속았수다예라고 적혀있다. 풀어보면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라는 뜻이다. 고된 물질을 끝낸 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로 나누는 인사인 것 같다. 오른쪽에는 바당서랑 욕심내지 말곡 숨 참을 만큼만 하라욕심내지 말고 숨참을 만큼만 하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내 어깨와 세월에 지고 온 것은 꽃이었더라



 해녀 박물관

해녀에 대해 더 궁금해져서 해녀 박물관을 찾았다. 제주의 해녀는 과거에 제주도 수산 총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가계와 지역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생존권을 수탈하는 일제에 맞서 항일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제주 해녀의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박물관이다.

박물관 안에 있는 해녀들의 영상 인터뷰를 봤다. 대부분 부모의 권유로 어렸을 때 물질을 시작하다 보니 주름 자글자글한 노인이 된 지금까지 하게 됐다고 말한다. 바다가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엔 그들도 바다가 무서울 때가 있지만 주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육아에 소홀하지도 않았다. 옛날엔 갓난아이를 애기 구덕(직접 짠 바구니)에 담아 물질하러 갈 때 데려갔다가 불 쬐며 몸을 녹이는 사이 젖을 먹였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애기구덕을 발로 밀며 아이를 달래고 집안일을 한다. 생활력이 강한 그들은 억척스럽다그 문화와 정신이 있었기에 해녀 문화가 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다고 얘기하지만, 그들은 다시 태어나도 해녀를 하겠다고 말한다. 바다는 엄마의 품 같다고, 이렇게 자유로운 직업이 또 어딨냐면서.

다시 봐도 해녀의 고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조형물이 인상깊다


-해녀박물관

 

주소 :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전화번호 : 064-782-9898

시간 : 매일 09:00 - 18:00 (17시까지 매표) 




 해녀 체험

 

박물관에서 해녀의 역사를 알았으니 직접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인터넷에 해녀 체험이라고 검색한 뒤 괜찮아 보이는 곳을 하나 찾아 예약했다. 체험비는 35,000원으로 저렴한 편은 아니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거였으니 하기로 했다.

이렇게 흐린데 바다에 들어가도 되는걸까?

 

체험 당일은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앞섰다. 어제 예약 전화를 하면서 만약 비가 오면 어떻게 하냐 물었더니 그럼 물이 깊어져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오히려 바람이 불면 위험하니 알아서 결정하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취소할까 하다가 날이 점점 선선해지니 얼른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해녀 체험장으로 갔다.

고요한 바다

 

도착해서 체험비 35,000원을 결제한 후 두꺼운 겨울 양말을 신고 해녀복으로 갈아입었다. 꽉 끼는 해녀복에 벨트를 둘렀다. 납작한 네모 모양의 돌을 엮은 벨트인데, 물에 잘 가라앉을 수 있게 하는 용도다. 진짜 해녀 삼촌은-제주에선 윗사람을 부를 때 남녀구분 없이 삼촌이라고 부른다-더 큰 돌을 엮어 맸다. 여자들은 머리가 물속에서 나풀거리지 않게 마스크를 썼다. 얼굴만 빼놓고 눈썹 위부터 목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다.

허리에 돌벨트 두르는 중 

그 위에 수경을 썼다. 오리발과 테왁을 들고 바다 근처로 갔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양손에는 장갑, 발에는 오리발을 끼우고 테왁을 양손 나란히 잡고 헤엄쳐 갔다.

테왁과 망사리


테왁은 물질할 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 가슴을 얹고 헤엄치는 용도로 사용되고 망사리는 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주머니로 테왁 밑에 달아 놓는다. 해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체험 도중 찍은 사진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나가자 해녀 삼촌이 먼저 들어간다는 말도 없이 물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열심히 살피고 똑같이 따라 해봐도 도저히 잠수가 되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바닷속 잠수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몸을 가라앉게 하려면 머리부터 깊게 넣어야 하는데, 숨을 오래 참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꾸만 물 밖으로 나와 테왁을 잡기 바빴다체험이 끝났다. 삼촌들은 해녀복을 벗으니 할망으로 변했다. 물속이 익숙해질 때 즈음 끝나니 아쉬웠다. 얼마나 잡았나 내 망사리를 봤다. 삼촌이 슬쩍 넣어 준 소라 하나, 보말 네 개, 이름 모를 것 하나가 다였다.

다 같이 잡은 해산물을 한곳에 모아두니 이만큼이다

해녀 체험의 마지막 코스, 소라 먹기

 

너무 피곤했다. 팔다리는 뻐근하고 정신은 나른하고. 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 이렇게 힘든 걸 어떻게 수십 년 동안 할 수 있는지 해녀 삼촌들의 체력에 감탄했다. 그들의 강인함과 억척스러움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해야 하는 건 억척스럽게 하되 숨을 참을 만큼만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인내와 성실함의 상징, 테왁과 망사리


-하도어촌체험마을

주소 :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897-27

전화번호 : 064-783-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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