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그려야지

2019. 4. 24. 23:48에세이 하루한편


엄마, 내 그림 보고 선생님이 뭐라고 했어? 어제 그렸던 그림의 해석을 물어봤다. 수요일인 오늘은 엄마가 실버 미술 수업을 듣는 날이었다. , 나무, 사람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하는 걸 보고 나도 그림을 그려 보낸 거였다. 내 심리 상태가 궁금해서. 뭐라 그러더라. 나무랑 풀, 꽃이 많은 거로 봐서 벌여둔 일이 많대. 근데 이룬 게 없대. , 어떻게 알았지? 나는 깜짝 놀라서 엄마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냉큼 대답했다. 나무에 열매가 없어서 그렇다나. 엄마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다른 말은 또 없나 궁금해서 재촉하듯 물었다. 그리고 본인보다 센 사람은 싫어한대. ! 맞아, 맞아. 와 엄청 용하네. 어떻게 알았지? 열매=성과물은 얼추 연상된다고 해도 나보다 센 사람을 싫어하는 건 정확히 맞췄다. 신기하다. 내 그림 옆에 사람이 아닌 고양이가 있어서 그런가?

사실 오늘도 벌여둔 일 중에 하나의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잘 안 됐다. 대외활동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에 대한 콘텐츠를 제작해서 원고를 쓰는 일이었다. 꼭 하고 싶었던 활동인데 아쉽게 뽑히지 못했다. 1차 관문인 서류엔 통과해서 기대를 걸었건만 그만큼 실망도 컸다. 합격자 명단에 없는 내 이름과 핸드폰 뒷번호 네 자리를 훑어보며 기운이 쭉 빠졌다. 난 면접에 약한 건가. 뭐지. 왜 안 된 거지! 왜 안 된 거냐고! 에잇. 다른 거 찾아서 할 거야. 뭐라도 할 거야. 안 그래도 할 거 많은데 또 할 거라고! 눈여겨보던 활동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걸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운이 없었지만 이게 안 되면 다른 무언가는 되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나를 기다리는 뭔가가 있을 거야.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래. 하하. 그래. 그럴 수 있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마음에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벌여둔 것에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열매를 그려 넣을 예정이다. 복숭아며 사과며 살구에 바나나까지 열매란 열매는 주렁주렁 열린 모습으로. 그럼 뭔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결과 쪽으로 말이다. 내 기분이 나아지려면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각양각색의 열매를 그리고 색연필로 정성스레 칠해줘야지. 기다려라. 나무야. 열매를 팍팍 그려 넣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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