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점점

2019. 4. 25. 23:53에세이 하루한편


얼마 전, 얼굴에 점이 생겼다. 자고 일어나니 생겼다. 광대 근처에 검은 점이. 작은 점 하나가 생긴 것뿐인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눈과 이마에 점이 세 개나 있어서 지저분해 보였다. 뭐가 이렇게 많이 생기는 거야. 거울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피부과에서 점을 빼도 금방 또 생겼다. 하나만 겨우 사라졌을 뿐이다. 점순이 기질을 타고났나. 그렇다고 해도 갑자기 점이 생기는 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고 일어나니 뿅 하고 생겼다. 뭐가 잘못 묻은 건 줄 알고 물로 닦아 봐도 지워지지 않아 당황했다. 엄마, 나 갑자기 점이 생겼어. 점이 자고 일어나니까 생길 수 있는 거야?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자꾸만 거울을 보게 됐다. 뾰로통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엄마가 말했다. 갑자기 생긴 거면 갑자기 없어질 거야. 대수롭지 않은 듯 무심한 말투였다.

점은 며칠이 지나자 사라졌다. 정말 말도 없이 갑자기. 인체의 신비인지 뭔지 그 뒤로도 점은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점의 위치는 매번 달라져도 내 얼굴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가 쌩하고 가버리는 건 똑같았다. 오늘 발견 한 건 오른쪽 눈 밑에 붉은 점이다. 아침까진 없었는데 몇 시간 전 거울을 보니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봐도, 봐도 믿기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이제는 아니다. 자고 일어나서 생긴 거니까 다시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겠지. 태연한 태도로 점을 바라봤다. 갑자기 생긴 건 갑자기 없어질 거야.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그럼 천천히 생긴 건 천천히 사라지나. 아니, 사라지지 않는 게 있나. 모든 건 다 사라지기 마련인데. 중요한 건 결국 사라진다는 거겠지. 점 하나에 생각이 길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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