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쪽으로 기우는 하루

2019. 5. 9. 23:56글쓰기 우당탕탕


코가 막혀 답답한 느낌에 잠에서 몇 번 깼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으니 머리가 띵했다.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니 얼굴을 띵띵 부어있었다. 코가 막혀도 콧물은 줄줄 나오고, 목은 따끔거렸다.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내 몸은 쉽사리 괜찮아지지 않았다. 열감이 있어 손수건에 찬물을 묻히고 목에 두르고 있었다. 더웠다가 춥기를 반복하는 몸 때문에 반팔을 입었다가 그 위에 카디건을 덧입었다 벗었다. 어제 산책을 무리해서 했던 걸까. 열감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오늘 하루를 흐지부지 보내야 하는 건가. 그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도서관에서 온 문자였다. 연체된 책 두 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어야겠군. 바로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 이번에 빌린 책도 다 읽지 못했으니 한 권이라도 다 읽고 오늘 반납을 할 셈이었다. 작가의 시작이라는 책을 폈다. 저자가 쓴 짧은 일화와 다른 작가들의 명언으로 이루어진 글이었으니 읽기는 쉬웠다. 책장을 술술 넘겼다.

오전 11시 반부터 읽기 시작해 오후 6시까지 책을 붙들고 있었다.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이나 명언은 따로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점심을 먹고, 중간중간 딴짓하는 시간을 빼고 책에 집중했다. 나 혼자 있는 오후, 조용한 오후가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베란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크로톤과 카네이션 근처에 길게 늘어졌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오후였다. 햇살 근처로 화분의 자리를 옮겨준 뒤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책을 읽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는 건지. 이런 시간이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서서히 기운을 차렸다. 내가 외출을 할 정도의 기운이 있었다면 이런 오후는 없었겠지.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을 일도 없었을 테고. 이 모든 게 예행연습을 한 것 같았다. 다음 주부터 소설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 읽는 것보단 쓰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할 테니.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시간이 오늘은 이렇게 눈이 빠지게 읽었으니 다음은 쓸 차례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유 없는 하루는 없는 게 아닐까. 온종일 책을 질리도록 읽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 난 이제 책을 읽는 것보단 생각하고 고민하고 쓰는 쪽으로 서서히 넘어갈 거야.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수업 전까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생각해가면 돼. 이런 식으로. 쓰는 행위에 몰두해보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 있었던 하루였다. 자연스레 걸어준 거다. 다행이었다. 그게 오늘이어서 다행이었다.          

자, 이젠 무언가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