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오늘

2019. 5. 24. 23:49글쓰기 우당탕탕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봤다. 작년 겨울에 썼던 소설. 최근 수정일이 11월이라고 적힌 소설 한 편을 누르자 그 계절이 떠올랐다. 소설을 한 번 써보겠답시고 몇 달을 매여 있었던 겨울이. 무슨 생각으로 다짜고짜 소설을 쓰겠다고 했던 걸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걸 써야만 해, 노트북을 들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쓴 글이었다. 그 시절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고 글의 목적지가 소설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쯤인지, 그동안은 어디 있었는지, 어디서 얼마만큼 길을 잃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게 되자 걸음을 재촉했던 것 같다. 롱패딩을 입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추웠던 날이었지만 마음만은 뜨거웠던 겨울이었다. 내 생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걸 어렴풋이 실감하기도 한 나날이었다. 머리를 굴려 소설 한 편을 어찌어찌 마무리 지었다. 그때로부터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소설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소설을 공부하는 중이다. 다시 읽어보니 놓쳤던 부분이, 아쉬운 부분이 눈에 밟혔다. 여기는 조금 더 길게 쓸걸. 여기는 시점이 불분명했네. 전체적으로 사건이 조금 더 명확했으면 좋았을걸. 수첩에 아쉬운 점을 적었다. 다시 고치기 위해. 짧은 소설은 짧은 것대로, 이건 이거대로 고쳐 볼 생각이었다.

내가 소설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만큼 마음이 붕 뜨는 때도 없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새로운 가 슬그머니 나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관찰하는 기분이다. 눈이 두 개나 더 생겼으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가만히 생각하게 만든다. 여태까지 살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만 같다. 길을 걷다가도, 뭔가를 먹다가도, 일상적인 무언가를 하다가도 예전과는 다른 무엇을 느낀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이 나타나는 거다. 살아있다.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정말 생생하게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이상한 일이다. 뭔가 내 안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런 나를 더 깊게 바라보고 관찰하기 위해 천천히 살핀다. 내 안에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이런 내 모습을, 또는 문득 떠오르는 느낌을 쓰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보잘것없이 작은 것들이라도 붙잡아 두어 이렇게 글이 됐다. 무엇이 됐든 쓰기. 글을 쓰며 바뀌는 나를 천천히 뜯어보는 밤. 글은 나를 더 멀리 나아가게 할 거고, 소설은 나를 더욱더 넓은 세상으로 가게 할 것이라 속삭인다. 지금까지 무엇이든 써왔던 것처럼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기록한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음을 믿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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