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과감함

2019. 5. 30. 23:54글쓰기 우당탕탕

소설 수업 중 두 편의 글을 읽고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한 명씩 물어가며 글이 어땠는지를 물었다. 대부분 글 속에 나온 의 태도를 지적했다. 도덕적 잣대에 어긋났다는 게 이유였다. ‘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불편했다, 짜증 났다 등등. 소설 속 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맞아요. ‘를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하죠. 선생님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생각을 해요. 말을 안 하고 표현하지 않을 뿐이지 다 우리에게 있는 모습이에요. 작가는 아마 우리에게 일부러 이런 불편한 감정을 주려고 이렇게 썼을 거예요. 어느새 우리는 설득 당한 거예요. ‘가 마치 진짜 나 같고, ‘는 이런 데 너는 안 그럴 것 같아? 이렇게 묻는 것 같고, 그렇죠.

우리는 흔히 소설 속 인물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죠. 작가는 고민해요. 과연 이렇게 써도 될까. 어디까지 써야 할까. 그런데요, 세상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일들이 항상 일어나요. 선생님은 확실한 말투로 덧붙였다. 작가는 자기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과감하게 말할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자신이 만든 인물을 믿는다면 끝까지 끌고 나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감하게.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엔 내가 나를 믿는 일이었다. 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를 믿고 끝까지 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를 다시금 떠올려봤다.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소재를 찾았지만, 주제는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내 개인적인 사건과 연관된 글을 막 쓰려는 참이었다. 나의 깊은 내면의 어떤 곳과 맞닿아있던 사건을. 쓸 용기가 나다가도 사라지는 글이었다.

과감하게. 그 말을 떠올렸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믿는다면 과감하게 말할 필요가 있어요. 더 나아갈 필요가 있어요. 선생님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쓰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뜻이겠지.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이야기를 끝마쳐야 한다는 걸 확신했다. 내가 쓰려는 글이 나를 어디까지 나아가게 할지 모르지만, 또 나를 얼마나 깊은 곳까지 내려가게 만들 셈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써야 한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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