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①_잃어버림

2019. 5. 29. 23:58에세이 하루한편

 

서울에서 비교적 저렴하다는 동네 부동산을 찾아갔다. 집 좀 보고 싶어서 왔는데요. 내 조건을 말했다. 보증금을 조금 더 올리면 집이 많은데. 그 가격에는 많이 없어요. 보증금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와 이사 날짜를 물었다. 그리곤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적고선 잠시 기다리세요, 했다. 사장님은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받았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목걸이처럼 걸고 걸려오는 전화를 바로바로 받았다. 연필로 쓱쓱 그으며 메모를 하는 걸 지켜보다가 사무실을 둘러봤다. 다섯 평정도 돼 보이는 사무실 안에는 컴퓨터 다섯 대와 정수기 하나, 커튼 뒤쪽으론 간단한 다용도실이 있었다. 왼쪽 벽면에는 구()의 지도가 크게 걸려있었다. 바탕색은 노란색이고 검은색으로 집을 표시해 뒀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게 꼭 거대한 벌집 같았다. 여기가 누군가의 집이 결정되는 곳이구나.

총 다섯 군데를 보고 왔다. 첫 번째 집은 매트리스를 놓으면 활동 공간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방이었다. 네 평 정도 된다고 했다. 화장실에선 쾌쾌한 담배 연기가 났으며 전체적인 느낌이 별로였다. 관리비는 얼마에요? 9만원. 9만원이요? 난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9만원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집인데 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얼른 자리를 떴다. 두 번째 세 번째 방으로 갈수록 괜찮아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상술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일 안 좋은 방을 먼저 보여준 뒤 일반적인 방을 소개해주는 것이. 조금 더 넓고 사람이 살 만하다고 느끼게 하는 방이었다. 군데군데 벽지가 상하고 인덕션이 다 상해있어서 블루스타를 사용해도, 첫 번째 집보다는 나았다. 보증금이 올라갈수록, 월세를 올릴수록 방의 때깔이 달라졌다. 벽지의 상태와 옵션 가구들의 상태, 엘리베이터의 유무와 건물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모두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돈에 따라 주거지의 계급이 있음을, 억지로 살수밖에 없는 집과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부동산 근처 공원으로 갔다. 머리를 좀 식힐 필요가 있었다. , 난 어디로 가지. 다른 동네 부동산에 전화해 내 조건으로 방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한 군데는 턱도 없었고 다른 한 군데는 매물이 없다고 했다. 매물이 없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알아본 뒤 바로 전화를 주겠다고 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얼굴이 익을 것 같은 더운 오후 네 시, 내 한 몸 거둘 집은 어디 있을까 생각했다. 어딘가엔 있겠지. 적당히 내 마음에 들고 가격도 합당한 곳이 있을 거야. 더 찾아보자고 생각하며 공원을 떠났다. 다리 밑에서 포커를 치는 노인들과 장기를 두는 노인들, 자전거를 타는 젊은 사람들과 닭꼬치를 파는 역 근처를 지나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집을 생각했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를 상상하자 너무 먼 곳으로 온 것처럼 느껴졌다. 앞으론 어떻게 해야 하지. 길을 잃은 기분으로 뜨거운 햇볕 아래 잠시 멍하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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