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마법 같은 순간

2019. 6. 15. 23:51글쓰기 우당탕탕


허구와 현실에 걸쳐있는 애매모호한 세계에 빠져있었다. 합평 시간에 제출할 소설을 쓰기 위해서다. 두 문단 정도 적어놨던 파일을 열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잘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손보기가 어려웠던 글이었다. 완성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써놨던 걸 올릴까 고민했던 글. 저번 주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미리 써둔 글을 내도 되나요. 선생님은 상관없다고 했다. 합평을 받고 싶은 글을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그래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으면 따끈따끈한 글 하나 써야 하지 않겠어. 예전에 블로그에 적었다시피 써야만 했던내용을 실제로 적어야 하지 않겠어. 지금은 습작하는 시기이니 이렇게 저렇게 써봐야 하지 않겠어. 짧은 걸 썼으면 이보다 더 긴 것도 쓸 수 있겠다는 마음 하나로 들었던 수업이니까, 어떻게든. 약속도 영상 편집 강의도 없는 토요일. 수첩을 펴서 미리 만들어놓은 인물과 상황을 구체화했다. 개연성이 있는 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했다. 인물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 그려나갔다. 적으면서 정리했다.

내가 설계한 대로 초고를 썼다. 분량이 얼마나 되나 봤더니 2페이지, 두 쪽이었다. 밥을 먹고 쉬고 다시 생각하고 수첩에 적고, 고민하고 쓰기를 반복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내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 근처에 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걸 짧은 글이지만 담아냈고, 내가 수업을 통해 흔적을 남기고자 했던 목표를 이뤘기 때문이었다. 어렵지만 재밌는 시간이었다. 힘들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흐트러진 마음과 분위기에 휩쓸려 다니던 요 며칠과는 다르게 엉덩이가 무거웠던 하루였다. 오래 앉아서 오래 생각했다. 쓰기에만 집중한 시간이었다. 얼마 만에 느껴본 글에 대한 집중력인지 모르겠다. 열심히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걸 썼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이제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던 것을 한번 훑어본 뒤 틈날 때마다 퇴고할 예정이다. 퇴고하면서 곱절의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미리 겁먹지 않으려 한다. 쓰는 즐거움, 썼다는 성취감을 조금 더 즐기고 싶다.

내가 만들어낸 세계를 내 방식대로 글에 담는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신비한 일인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상한 과정을,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을 계속하고 싶을 뿐이었다. 꾸준히 해서 나중엔 짧은 소설집도 내는 상상을 했다. 표지가 예쁘고 중간중간 들어가는 그림이 예쁜 짧은 소설집을. 아득히 멀 수도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은근히 가까울 수도 있는 미래를 떠올려봤다. 어떤 모습이든 여전히 쓰는 사람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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