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④_체력과 정신력은 필수

2019. 6. 12. 23:45에세이 하루한편

 

아침을 먹은 뒤 방을 알아보는 게 나의 일과가 됐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이 방 저 방을 눈으로 훑었다. 괜찮은 동네가 어딘지 살펴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인지도 따져봤다. 실제로 매물이 어느 정도 있는지와 시세를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보고, 거리뷰를 통해 분위기를 대충 살폈다. 생각했던 지역은 예상과 달리 매물이 많이 없었다. 방 구하기 카페나 앱으로 봐도 그랬다. , 또다시 지역을 바꿔야겠구나. 괜찮아 보이는 매물이 있는 부동산에 전화해 반려동물이 가능한 집을 추려달라고 할 요량이었지만 그럴만한 방이 없었다. 내 예산에 맞는 곳은 1999년도에 지어진 오피스텔 한 채였다. 보라색 말풍선 하나가 달랑 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전화해볼까, 잠시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실 사진도 올라와 있지 않았을뿐더러 공인중개사가 보유한 매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도 위엔 가격이 맞는 방이 있어서 클릭했지만, 부동산 페이지가 뜨자 내가 봤던 매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힘이 없어졌다.

점심을 먹으며 생각했다. , 오늘 방을 보러 나갈 예정이었는데. 제대로 된 부동산 하나 찾지 못했네. 그동안 방을 보느라 쏟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소설 공모전은 물 건너갔고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해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던 나날이었다. 소설 수업에 낼 글이라도 잘 쓰면 다행일 정도였고 글도 제대로 못 쓰고 맘 편히 쉬지도 못했다. 계속 새로운 매물이 있나 확인하느라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이었다. 허송세월을 한 건 아닐까 생각하자 짜증이 났다. 방은 왜 이렇게 구하기가 어려워서 난리야! 고양이랑은 언제쯤 같이 살 수 있는 거냐고! 내 글! 내 시간! 아아 금 같은 시간. 굶주린 배는 채웠지만,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B를 만났다. B는 말했다. 집 구하는 건 원래 체력과 정신력이지. 정신을 붙들어 매라구. 나는 내 마음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모든 의욕을 상실해버려서 멍한 상태였다. 아무런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애처럼 징징댈 뿐이었다. 우리는 좀 걷고 카페에 들러 같이 집을 알아봤다. 다시 새로운 곳을 정해 부동산 몇 곳에 전화를 한 뒤 약속을 잡았다. 이 동네에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할지 대책을 세웠다. 내 마음을 다시 정리한 셈이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도 의연한 태도를 보이고 싶은데. 몇 번씩 동네를 찾고 알아보다 무산되고 알아보다 무산되기를 반복하니 지쳐버렸다. 집값은 비싸고 구하기는 어렵고. 체력과 정신력이 아이스크림 녹듯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날이었다. 이제는 체념했다. 어차피 방을 본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지를 생각해놨으니 됐다. 그래. 운명에 맡긴다. 그냥 바보에서 체념한 바보가 됐다. 유리처럼 약하고 두부처럼 무른, 툭 건드리면 파사삭 깨지기 쉬운 내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던 날이기도 했다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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