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구구절절

2019. 6. 19. 23:52글쓰기 우당탕탕


소설 수업에서 합평할 글을 B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의견을 물었다.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내가 직접 쓸 때와 타인이 읽을 때의 감상은 너무 달랐다. B가 지적해준 구구절절 쓴 행동 묘사나 중복된 표현 즉, 게으른 문장이 눈에 띄었다. 눈치 재지 못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알 수 있었다.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문장,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표현은 다 지우기로 했다. 천천히 곱씹어 보던 B는 내가 전달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고 했다. 감정표현을 좀 더 자세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말하고자 하는 감정 상징적인 표현을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 난 완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찡하지 않아? 원래 자기가 만든 건 다 그렇지. 나도 내가 만든 비트 엄청 좋게 들려. 하지만 곧이어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 난 아직 멀었구나. 한참 남았구나. 깨지기 쉬운 정신력의 소유자인 나는 곧바로 자책으로 들어갔다. 문장을 탁 던지면 와, 마음 어딘가를 툭툭 건드리는 글을, 소설을 쓰고 싶지만, 풋내기 지망생일 뿐이라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글 같아 실망했다. 난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니까 문장을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너무 쉽게 쓰고 쉽게 올리는 걸까. 단 한 번도 쉽게 쓴 적은 없는데.

그다음 절차는 불안감이었다. 다른 강의의 수업 후기를 본 게 떠올랐다. 이런 글이었다. ‘반짝이는 프로 작가의 글을 읽는 것보다 괜찮은 작가 지망생의 글을 보는 게 아, 난 재능이 없구나. 빨리 접어야겠다고 느끼는 부작용도 있지만내가 꿈꾸던 소설가가 되지 못하면 어쩌나. 무엇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되고 나서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게, 꿈꿔왔던 그 행위를 계속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제조차 만들지 못할 상황을 떠올렸다. 아예 꿈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소설가가 되지 못한다면? 뭐라 말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그럼 여행기랑 에세이를 더 열심히 쓰면 되지. 그동안 내가 쓴 글이 그래도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잖아. 난 슬그머니 그늘로 숨었다. 여행기와 에세이가 더 쓰기 쉽다는 게 아니라 글에 대한 여지를 두고 싶어서였다. 내가 만약 소설을 잘 쓰지 못하더라도, 재능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끼더라도 실망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했다.

한 편 두 편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아니, 나아질까. 이틀 전만 해도 쓰는 게 신이 났지만, 퇴고하면 할수록, 글을 객관적으로 볼수록 난 자꾸만 작아졌다. 그럴 수 있지. 흔한 위로의 말로 넘기기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남길 수밖에.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나만 더 괴로워질 게 뻔했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어떤 글이 됐든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찾는 여정을 멈추진 않으리라 다짐한다, 라고 쓰려다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뭐 별수 있나. 오늘도 불안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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