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와 인생

2019. 6. 17. 23:54에세이 하루한편


게을러지기 쉬운 오후 두 시,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짧은 소설 퇴고를 위해서다. 카페 안은 월요일 오후였지만 주말처럼 붐볐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으로 해가 들어왔다. 일정한 간격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마치 기다란 흰색 줄 같았다. 책상 위 노트북 위에도, 마우스 위에도, 밀크티 위에도 햇빛이 내려앉았다. 북적거리는 실내였지만 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맞은편 집에 걸어놓은 빨래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한 번씩 훑은 뒤, 내가 쓴 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적어두었다. 예를 들면 사건이 어디에서 어디로 시작되는가, 무엇과 무엇이 충돌해서 오는 것인가, 에 대한 것을 분명히 하기.’ 같은 거다. 몇 가지를 적고 나서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을지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을 바꿨다가 다시 원상태로 두었다가 묘사를 달리하기를 반복했다.

그 순간 나는 소설의 인물 윤이 되었다. 윤이 시험을 보고 있으면 시험장에 있었고, 환청을 듣는 순간엔 나도 가슴이 뛰었다. 시험을 망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망쳐버린 건지 몰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을 땐 나 또한 막막했다. 윤은 나이기도 했고 내가 아니기도 했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또한 선생님이 소설을 인형극에 비유한 이유도. 난 커튼 뒤에서 실을 당겨서 윤이라는 인형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이었다. 내가 손을 들면 윤이 손을 들고, 내가 가방을 싸면 윤도 가방을 쌌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너무 어설프고 미흡한 인형 놀이일지 모르겠지만. 인형 놀이를 하다 새삼 놀랐다. 내가 짧은 소설을 쓰다니. 수업을 듣기 전 소설을 쓰고 싶다는 내 소망이 뜬구름 잡는 생각처럼 느껴지던 때가 떠올랐다. 소설은 무슨. 공부해본 적도 없으면서. 내 안의 염려를 욱여넣고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정말, 난 쓰고 있었다.

아직도 소설가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모르면서 꿈꾸는 중이다. 허구를 창조하는 일과 그 안에 현실을 반영하는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천천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만으로 행동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하나씩 올리고, 독립 출판을 하고, 여행기를 쓰고, 소설을 공부하고, 짧은 소설을 썼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블로그에서 본 문구가 떠올랐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책임질 수 있도록 열심히 할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일도, 내일모레도 성실히 글을 쓰면서 살 거다.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놔두면서. , 오늘 하루는 꽤 괜찮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