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⑧인생은 알 수 없는 대로

2019. 7. 3. 23:58에세이 하루한편


어제 본 방중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방이 있어 찾아갔다. 어제는 9시가 넘은 밤에, 오늘은 낮인 2시 반에. 시끄러운 대로변과는 달리 집 쪽으로 들어갈수록 조용한 게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한 층에 한 세대밖에 살지 않는 게 좋았다. 오래된 집에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창문으로 창밖 풍경이 보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베란다가 조그맣게 있고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크기가 되는 방이었으니까. 내 예산에서 조금 무리한 방이지만 그래도 이 가격에 다른 방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결정했다. 이 집에 살기로. 다시 한번 집을 보고 부동산을 찾아가 가계약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중개인은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마침 집주인과 잘 아는 사이였고 여기에 이런 매물은 흔치 않다고 했다. 살기는 괜찮나요? 내가 물었다. 괜찮죠. . 무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등기부 등본을 보여주고 확인해야 할 것들을 설명해준 뒤 집 주인의 계좌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이렇게 큰돈을 보낸다니. 은행 창구에서 송금 업무를 보며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 이제 진짜 여기 사는 거야? 자꾸만 묻게 됐다. 금요일에 계약서를 쓰기로 하고, 이사 날짜는 7월 셋째 주로 정했다. 아직 이사한다는 게, 이 동네에서 산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울에 묶여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 집을 구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아 이번에도 계약이 안 된다면 서울과는 인연이 없는 거로 정리를 하려 했다. 인연이 슬그머니 손을 뻗었다. 계약하기 직전까지 세입자와 조율해야 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오늘 오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 그래도 내 팔다리 뻗고 잘 방 하나 구했구나. 얼떨떨함과 허탈함, 허무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방을 구했구나. 진짜 구했어. 장장 한 달간의 여정이 끝났어! 곧 계약이야! 이런 글을 쓰는 날도 오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정작 내가 구한 방의 위치는 내가 한 번도 살고 싶다거나 살게 될 거란 예상을 하지 못한 곳이었다. 살면서 다섯 번을 채 오지 않았고 관심 자체가 없었던 동네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 별일이 다 많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할머니한테 벗어나고서 도망치듯이 온 곳이 여기였는데. 네가 여기 올 줄이야. 엄마는 이 동네를 좋아했다. 엄마 우리 여기서 자주 만나자. 여기서 놀다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조금씩 내 공간에 기대감과 막연한 희망이 부풀었다. 어떻게든 살아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알 수 없는 인생의 여정을 어렴풋이 느끼며 웃었다. 삶은 예상치 못한 일투성이며 오늘은 수많은 날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론 또 얼마나 많은 일이 날 찾아올까. 두려움보단 기대감을 가지는 쪽이 되고 싶다

내 방을 찾았어!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