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16. 동백꽃 가슴에 달고

2018. 9. 4. 23:55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16]
제주 4.3 평화 공원

제주 4.3 평화 공원에 다녀왔다. 마음이 무거워져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자신이 없어 쓰지 말까를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쓰기로 했다.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아직도 적당한 이름을 짓지 못한 채 4.3 사건이라 불린다. 이름 짓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평화 공원 기념관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4.3 백비가 그 사실을 일깨워준다. 고요하게 잠든 백비는 이 순간에도 진정한 이름을 새길 수 있기를 기다린다.


이 사건은 60년 동안 침묵 속에 살다 세상에 알려졌다. 입 밖에 내놓지 못했던 일, 알고서도 몰라야 했던 일이었다. 소설가 김석범은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 불렀다.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인 것이라 말했다.


기억을 자살시킬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들, 그중에서도 난 무명천 할머니가 가슴에 남았다. 진아영이라는 이름을 두고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던 한 노인이다. 이유도 모른 채 토벌대가 발사한 총에 턱을 맞아 턱이 없는 채로 평생을 살았다. 그 턱을 가리려 하얀 무명천을 둘렀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언어 ‘모로기 할망’이라 불렸다. 언어장애인의 제주 방언이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살았고 평생을 약에 의지해 살다 세상을 떠났다.



4.3의 희생자는 무고한 주민들이다. 이유도 모른 채 가족이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끔찍한 기억을 자살시켜야 했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가슴 아픈 역사다. 보고 들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쓰는 것. 부족한 글로나마 슬픔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는 것. 더는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 간 이들을 잊지 않는 것이다. 하염없이 먼 길 떠난 들의 목소리를, 이야기를, 기다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