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 22. 막연한 다짐

2018. 9. 10. 23:58여행을 기록하자/제주도 한달살기

[22]
새별오름-탐라 도서관

다음 주 금요일이면 김녕을 떠난다. 그 사실을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나면 한 달이 어쩜 이렇게 빠른지 믿기지 않는다. 아쉬움이 몰려오고 이대로 떠날 수 없다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우선 추석을 가족과 보내러 서울에 가야 하지만. 제주에 산다는 건 ‘좋다’라고 느끼는 시점이 자주 찾아오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 저 너머에서 바람 타고 넘어온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마당에 빨래를 널 수 있는 것, 그 빨래가 바람에 살랑이는 걸 지켜볼 수 있는 것. 마당 평상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그리고 집 앞으로 찾아오는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줄 수 있는 것, 내킬 때 언제든 숲속으로, 바다 주변을 서성거릴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 어렴풋이 그 막연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오늘 서성거린 곳은 새별오름이다. ‘초저녁에 외롭게 떠 있는 '샛별 같다’해서 ‘새별’이라는 이름이 붙은 오름. 억새가 막 피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살짝 오므린 듯 살랑거리는 게 귀여웠다. 천천히 오르다 보니 정상이었다. 오름은 어딜 가던지 그냥 지켜보게 만든다. 새별오름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바람을 맞고 주위를 둘러보다 내려왔다.


오름 도착 부근에 조개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 아저씨는 색소폰 불던 것을 잠시 멈추며 나에게 말했다.
“여기는 10월에 와야 해. 억새 핀 게 이거랑 똑같아.”
아저씨는 남자 손바닥보다 큰 하얀 조개를 들며 말했다. 햇빛 때문에 더 반짝거렸다. 이렇게 온통 하-얗다며 다시 한번 다른 조개를 내밀어 보이는 아저씨. 조개에 담긴 진주 귀걸이를 살 것 같아서 말을 걸었던 걸까? 난 진주 귀걸이보다 10월의 새별오름, 조개처럼 하얀 억새밭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10월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점점 다가왔다.

이마트에 가려다 들른 탐라도서관에선 <순이 삼촌>을 읽었다. 제주에서 읽는 순이 삼촌이란 단순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사명 같았다. 다 읽진 못했지만, 꼭 다시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문득 다시 제주에 내려온다면 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지내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10월의 억새밭도, 3월의 들불 축제도, 제주의 겨울과 봄을 만나러 오리라 막연히 다짐했다.